신호경 한지훈 민선희 기자 = 국내 금융시장 전반이 미국 대선 충격파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달러화 강세에 1,410원대까지 치솟았고, 코스피는 계속되는 외국인 이탈에 2,400선마저 위태로운 모습이다.
가상자산 시장만 활황이다. 비트코인은 원화 시장에서 개당 1억2천60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전날 기록한 최고가(1억2천801만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대중 수출 의존도가 높고 반도체 등 일부 업종 편중이 심한 한국 경제의 취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 원화 가치·주가 하락하고 코인만 급등
1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장 초반 1,410원 선을 넘어선 뒤 1,410.6원까지 뛰었다. 지난 2022년 11월 7일(고가 1,413.5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1,400원대 환율은 크게 보면 1997년 외환위기, 2007년 금융위기, 2022년 미국발 고금리 충격 이후 역사상 네 번째일 정도로 매우 드물었다. 이 때문에 1,400원은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꼽히기도 했다.
원/달러 환율은 미 대선 직전인 지난 5일 1,370원대에 머물렀으나,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 당선 직후 연일 급등했다.
달러 강세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공약대로 관세를 인상하고 이민자를 추방하면 인건비와 물가가 높아지고 정책금리 인하 속도도 느려질 것이라는 관측이 작용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장중 106.052까지 상승했다. 106을 넘은 것은 지난 7월 이후 넉 달 만이다.
다만, 엔/달러 환율이 지난 5일 151.96엔에서 이날 154.74엔으로 소폭 상승한 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원/달러 환율 상승 폭이 더 컸다.
코스피는 전날보다 14.30포인트(0.58%) 내린 2,468.27로 출발해 오전 한때 2,430대까지 흘러내렸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이 약 2천900억원 넘게 순매도하고 있다.
대장주인 삼성전자[005930] 주가는 장중 5만1천700원까지 하락했다. 지난 2020년 6월 24일(5만1천600원) 이후 4년 4개월여만에 최저 수준이다.
코스피는 미국 대선 직후인 지난 8일 장중 2,593.15를 단기 고점으로 하락 전환해 이날까지 나흘째 내림세를 지속 중이다.
미국 뉴욕 증시에서 3대 지수가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 등 아시아 주요 증시가 비교적 견조한 흐름을 보이는 것과 대조된다.
이런 가운데 가상자산 시장은 ‘불장’을 이루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서 1비트코인은 이날 오전 1억2천60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코스피와 반대로 나흘째 상승세다.
미국 대선 이틀 후인 지난 8일 종전 최고가인 지난 3월 14일의 1억500만원을 돌파했고, 지난 12일 오후 사상 최고가(1억2천801원)를 기록했다.
미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에서 비트코인 1개당 가격은 9만달러를 넘어서면서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 “트럼프 관세 정책 우려가 환율·증시에 영향”
한국 경제의 취약점이 금융시장 충격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높은 수출 의존도와 특정 업종 편중이 대표적이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관세 정책에 따른 미국 경제 움직임에 우리나라 환율이나 증시가 많이 연동되는 취약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도체, 자동차, 화학 등 3대 수출 품목에 대한 전체 수출 의존도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며 “더구나 내수가 수출 둔화를 상쇄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고 분석했다.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대외의존도가 높아 트럼프발 관세와 보호무역주의 등 부정적 영향에 적극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높은 대(對)중국 무역 비중은 큰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올해 1~10월 기준 한국의 대중 무역 비중은 23.3%로, 미국과 유럽의 합계(25.3%)에 육박할 만큼 크다. 트럼프 정부가 대중 압박을 강화할 경우 그만큼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허문종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센터장은 “중국 교역 의존도가 높은 점에 금융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수출 지역을 다변화하는 등 장기간에 걸쳐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설상가상 전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의 15%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업황 부진도 시장 불안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의 경쟁력 훼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중국 반도체 기업의 약진으로 향후 한국 반도체 산업의 독점적 지위가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도 널리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차세대 반도체 개발 지연 등) 삼성전자 자체 문제에 더해 삼성전자가 주력으로 하는 메모리 반도체 단가가 9월부터 하락 중”이라며 “주식시장은 반도체 영향이 절대적인데, 삼성전자 주가 하락이 전체 지수를 끌어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시장이 점차 충격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주 실장은 “달러 강세로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을 정도인지는 의문”이라며 “펀더멘털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만큼 환율이 다시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