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배당주에 관심이 쏠린다. 올해는 폭염이 계속되면서 많은 사람이 더위에 고생하고 있지만 이때쯤이면 배당주에 투자할 시즌이다. 미국은 분기 배당이 일반적이지만 국내 상장사는 연말 결산 이후 다음 해 봄에 배당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아 미리 배당주로 넘어가려는 수요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 이후로 나타난다.
여기에 이달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기정사실로 자리 잡자 배당을 주는 주식의 투자 매력이 한층 더 부각되고 있다. 금리가 내려가면 무위험 자산인 예금 금리도 덩달아 떨어져 상대적으로 기대 수익률이 높은 배당주의 인기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최근 인공지능(AI) 관련 주식 등 성장주 주가 조정기에 함께 주가가 하락한 일부 배당주의 경우 일시적으로 배당수익률이 뛰고 있다. 배당률은 현재 주가를 배당금으로 나눈 수치다. 일부 우량주는 배당금을 꾸준히 늘려왔는데 갑작스러운 주가 하락으로 기대 배당률이 은행 예금 금리의 2배 이상으로 상승해 투자 대안으로 부상 중이다.
일단 국내 증시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기 위해 배당 등 주주환원이 강조되자 성장과 배당을 동시에 추구하는 국내 상장사들이 늘고 있는 것이 긍정적 변화로 포착된다. 다만 배당률만 보고 투자했다가 주가가 추가 하락하면 원금 손실 위험도 큰 만큼 회사의 배당 근원인 순이익의 증가 추세와 배당 의지를 대표하는 배당성향까지 꼼꼼히 챙겨서 투자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최근 주가 하락으로 저평가 매력까지 갖추자 외국인들이 매수한 현대차·기아, 여전히 잘나가는 조선업종의 지주사 HD현대, 채권 매각 등 투자 손익이 급증한 삼성생명, AI 관련주이면서도 배당성향이 40%가 넘는 리노공업 등이 올가을 매수할 만한 배당주로 거론되고 있다. 대표 배당주인 은행과 통신 인프라 관련주의 경우 최근 주가 급상승으로 배당률이 하락한 점은 유의해야 한다.
황호봉 대신자산운용 본부장은 “경기 침체를 피해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일시적인 주가 급락은 우량주 매수 기회”라며 “성장주 대비 변동성이 낮으면서 높은 배당률을 추구할 수 있는 배당주의 비중을 늘려 포트폴리오를 단단히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밝혔다.
고배당주가 된 저평가 현대차그룹 삼총사
매일경제신문과 에프앤가이드가 지난 8월 5일 이후 9월 10일까지 외국인 투자자들이 순매수하고 있는 종목의 최근 5년(2019~2023년) 주당 연 배당금과 배당성향, 배당률을 분석했다. 이들 종목 중에서 올해 예상 배당금 추정치를 기준으로 10일 현재 배당률이 5대 시중은행 정기예금 평균 최고금리(12개월 기준·3.4%)보다 높은 상장사는 9곳이다. 여기에 현대차·기아·현대글로비스가 포함돼 주목된다. 이들은 고점 대비 주가가 하락해 배당률이 뛰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6월 28일 종가 기준 29만5000원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당시 주가로 올 예상 주당 배당금(1만2675원)을 나눈 배당률은 4.3%다. 이후 주가가 조정받으며 10일 기준 5.5%로 상승했다.
최근 현대차는 ‘2024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대대적 밸류업 추진 계획을 공개했는데 핵심은 ‘통 큰 배당’이다. 내년부터 3년간 배당금을 25% 늘리고 자사주를 약 4조원 규모로 매입해 일부는 소각한다는 것이다. 전체 순이익에서 배당금을 뜻하는 배당성향은 최저 26.32%(2021년)에서 최고 55.15%(2020년)로 나타났다. 배당성향이 최소 25%는 넘었다는 뜻인데 현대차는 자사주 소각까지 포함한 주주환원율(TSR)을 35%로 높이기로 했다.
증권가 관계자는 “현대차가 100을 벌면 35는 주주에게 돌려주겠다는 뜻으로 미국 상장사에는 못 미치지만 국내 제조업 기반 상장사로 봤을 땐 충분히 매력적인 주주환원”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주주환원이 가능한 것은 현대차의 올해 예상 순익이 14조3439억원으로, 2023년(12조2723억원)보다 16.9%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9의 선전으로 기아 미국법인 역시 지난 8월 판매량이 작년 동월보다 4% 증가한 7만5217대를 기록해 배당 재원인 순익이 쌓이고 있다. 기아의 올해 예상 순익은 1년 전보다 21.2% 증가한 10조6356억원으로 추정된다.
기아의 연간 주당 배당금은 2019년 1150원에서 올해 6502원으로, 5년 만에 5.6배나 증가했다. 5년(2019~2023년) 평균 배당성향은 25% 수준이다. 기아 역시 올 들어 주가가 최고가를 찍었다가 조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최고가 기준 5%였던 예상 배당률이 10일 6.5%까지 올랐다. 기아의 향후 12개월 예상 순익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3.85배로 저평가된 상태다. 같은 기준 현대차 PER 역시 4.58배로 낮은 편이다.
현대글로비스 역시 밸류업과 지배구조 개편 기대감에 주가가 지난 7월 15일 52주 신고가를 찍었다. 당시 배당률은 3%대 중반 수준이었는데 주가가 조정받으면서 10일 기준 4.15%로 한 단계 올라섰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계열사 중 가장 많은 지분(20%)을 들고 있는 현대글로비스는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기업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숙명을 안고 있다. 이에 따라 5년 평균 21% 수준인 배당성향이 현대차나 기아 수준(25%대)까지는 상향 조정될 것이란 기대감이 큰 편이다.
지배구조 핵심 삼성생명 “순익의 절반 주주에게”
삼성그룹의 핵심 지배구조는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다. 그룹 최대 캐시카우인 전자를 생명이 지배하는 모양새다.
삼성생명은 수년간 그룹 내 보험 계열사 중 삼성화재보다도 실적에서 밀려 체면을 구겼다가 올해 본격적으로 살아나고 있다. 올 상반기 삼성생명은 1조3685억원의 순익을 올렸는데 전년 동기(9742억원) 대비 40.5%나 증가했다. 이 같은 성과는 본업인 보험 손익보다 채권 매매 등 투자 손익이 급증한 덕분이다. 금리 인하는 채권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보험사의 손익이 개선된다.
삼성생명의 상반기 투자 손익은 1조1127억원으로 1년 전(4960억원)보다 124.4%나 늘었다. 이 같은 투자 성과는 주주들에게 꾸준히 돌아가고 있다. 5년 평균 배당성향은 36.14%이며 2019년에는 순익의 절반 가까이(49%)를 배당으로 지급했다. 삼성생명 역시 현대차처럼 TSR을 높이기로 했는데, 자사주 소각까지 포함한 중장기 목표치가 50%다.
HD현대그룹의 지주사 HD현대의 경우 2023년 기준 배당성향이 99%에 달해 주목받고 있다. 배당률 역시 5% 수준으로 예금 금리보다 매력적이라는 평가다. 다만 2020·2021년 2년 연속 배당이 중단되는 등 조선업 특성상 실적 부침이 크고 또 다른 그룹 내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의 존재로 배당 안정성이 떨어지는 약점도 안고 있다.
숨은 코스닥 배당성장주 리노공업
코스닥 상장사 리노공업은 2019년 1200원이었던 주당 배당금을 올해 3067원까지 끌어올릴 전망이다. 5년 만에 배당을 2.5배로 늘린 셈인데 AI 관련 주식 중 독보적인 주주환원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배당률 자체는 낮은 편이지만 별도 실적 기준 리노공업의 배당성향은 5년 평균 38.61%로, 다른 우량주들보다 압도적인 배당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리노공업은 반도체나 인쇄회로기판(PCB)의 전기적 불량 여부를 체크하는 검사용 장비와 부속 제품들을 생산·판매한다. AI 시장이 성장하면서 반도체가 점점 미세화되자 정밀하게 검사하는 장비의 수요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2020년 500억원대였던 리노공업의 순익은 작년 1100억원으로 올라섰으며 올해도 전년 대비 소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수림 DS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리노공업의 주력 제품은 메모리에서 시스템 반도체까지 모든 종류의 칩에서 사용할 수 있다”며 “국내외 고객사가 1000곳을 넘기 때문에 실적 개선 추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일호 기자]